수제 도자기가 서로 똑같을 수 없는 이유

Studio Esja ·

“모든 작품은 단 하나뿐입니다”라는 문장은 너무 많은 상품 페이지에 적혀 있어서 이제 아무 뜻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적겠습니다. 같은 흙으로 같은 오후에 같은 유약을 입혀 만든 두 개의 수제 잔이 어떤 원리로 서로 다른 기물이 되어 가마에서 나오는지를.

흙은 고르지 않습니다

한 포대 안에서도 흙은 물기와 입자 분포가 조금씩 다릅니다. 무게를 똑같이 단 두 덩이가 같은 힘 아래에서 다르게 움직입니다. 하나는 조금 더 키가 크게 올라가고, 하나는 벌어지려 합니다. 흙에는 기억도 있습니다. 꼬박밀기와 성형에서 들어간 응력은 재료 안에 남았다가 건조와 소성 중에 형태의 작은 움직임으로 다시 나타납니다. 한때 살짝 타원으로 눌렸던 전은 깎을 때 아무리 둥글어 보였어도 불 속에서 다시 타원 쪽으로 돌아갑니다.

손은 기계가 아닙니다

물레에서 올라간 벽은 압력을 그대로 기록합니다. 물레는 고르게 돌지만 벽을 타고 오르는 손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 번의 끌어올림은 정해진 절차가 아니라 그때그때의 흥정입니다. 수제 잔을 감고 올라가는 물레 자국은 말 그대로 그날 오후의 집중을 그린 그래프입니다. 같은 형태를 마흔 번 만들면 마흔 개의 형제가 나옵니다. 분명히 닮았고, 하나하나 다릅니다. 물레 앞에서 충분히 오래 지낸 사람이라면, 대개 물레 자국만 보고도 누가 만든 작품인지 알아봅니다.

유약의 두께는 하나의 지형입니다

작품을 유약에 담그면 밀리미터의 몇 분의 일 단위로 두께가 다른 옷이 입혀집니다. 흘러내리다 고인 자리는 두껍고, 모서리와 능선 위는 얇습니다. 그 몇 분의 일이 모든 것을 정합니다. 두꺼운 자리에서는 색이 깊어지고 고이며, 전 위에서 얇아진 자리에서는 흙이 비쳐 나옵니다. 결정유에서는 이 작용이 더 큽니다. 결정은 녹은 유약의 화학과 냉각이 허락하는 자리에서 자라고, 같은 자리에 결정을 앉히는 소성은 두 번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유약이 잔의 성격을 바꾸는 방식에 더 있습니다.

가마에는 지형이 있습니다

가마 안의 온도는 하나의 숫자가 아닙니다. 선반마다 더 뜨거운 자리와 더 서늘한 자리가 있고, 열선 가까이 선 작품은 한가운데 선 작품과 조금 다른 소성을 겪습니다. 같은 유약이 어디에 섰는지에 따라 더 반짝이게, 더 무광으로, 더 갈라지게, 또는 결정이 더 자란 채로 나옵니다. 도예가들은 이것을 재임이라고 부르고, 자기 가마의 지형을 익히는 데는 몇 해가 걸립니다. 그리고 끝나는 법이 없습니다.

구입하실 때 이것이 뜻하는 것

상품 페이지의 사진이 모델의 예시가 아니라 받으실 바로 그 기물이라는 뜻입니다. 컬렉션의 모든 작품을 하나씩 촬영해 한 번만 올리고, 주인을 찾으면 판매 완료로 표시하는 이유입니다. 두 개의 잔이 유약과 형태를 나눠 가질 수는 있어도 고르시는 것은 사양이 아닙니다. 이 전과 이 표면을 지닌 이 잔, 한 번만 존재하는 이것을 고르시는 것입니다.